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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달 아래 그리운 꿈 하나

 

                                     -정조 이산 마지막 이야기

 

 

 

 

  묵매도(최종).jpg

 

:: 묵매도(梅圖) | 정조 , 1777년, 지본담채, 123.5*62.5cm

즉위한 이듬해 작품. 힘찬 매화가지가 대담하게 뻗은 화면구도는 젊은 군왕의 기백이 느껴진다.

예술적 소양도 깊었던 그는 파초도(芭蕉圖), 묵란도(墨蘭圖) 등의 다른 작품들도 남겼다.

 

   

 

 

화성의 등촉 하나둘 불 밝힐 제 

밤 깊은 삼경三更 낮보다 환했건만 

적막한 산새 떠도는 부엉새 울음에 

만물을 비추던 밝은 달 수정전*에 잠기었다. 

이생에 다하지 못한 꿈일망정 

서쪽 땅 성곽에 뉘었으니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도 

빛은 지지 않으리

 

 

꽃은 지고 버들잎 바랜

만고풍상 긴 시절 지나

성벽에 새겨진 그리운 꿈 하나, 바람이 불러낸다

백성이 임금의 하늘이었고

임금이 백성의 아비였던

지극한 홍복(洪福)의 꿈,

정조, 이산 그가 품었던 조선이여.

 

 

 

*수정전(壽靜殿): 정조의 숙적인 노론벽파의 핵심, 왕대비 정순왕후가 거쳐하던 곳.

 

 

 

 

 

그가 꿈꿨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11살 세손시절 뒤주에 갇힌 친부의 죽음에 오열하고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하는

당쟁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던 그가 마침내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면,

그가 설계하고 실현하고 싶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정조가 총애했던 도화서 화원이자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는 군주의 바람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풍속화-씨름.jpg  

::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 중 씨름 | 김홍도 作, 지본담채, 39.7x26.7cm

 

 

 

들썩들썩 모래가 춤추는 단오날의 씨름터. 긴장과 흥분으로 여기저기 쏟아지는 탄성,

이내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갓을 쓴 양반은 얼굴을 부채로 가리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 판의 승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신명난 씨름판에 상투 튼 어른과 동네아이가 섞여 앉았다. 그뿐 아니라

지체 높은 사대부도 저잣거리 상인도 막일하는 종의 구분도 이 순간만은 없다.

귀하고 천함도 공중에 흩어지는 모래처럼 형태조차 없다.

응원하던 편이 이기기라도 하면 손을 마주잡고 얼싸안는다.

흥에 겨운 씨름마당이 세상의 전부다. 웃는다. 조선 땅이 들썩인다.

단오날, 백성들은 그저 흔흔낙락(欣欣樂樂)이다.

   

 

그림 속 조선의 백성은 정감이 넘치고 즐겁다. 종일 머리를 조이던 갓끈을 풀면서

양반의 체면은 슬그머니 내려놓고 모래에 곤두박질치는 버선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등골에 진땀이 맺힌다.

 

 

생동하는 삶, 역동하는 생명이 울리 퍼지는 그 삶은 하늘 아래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비록 그 시대 이름조차 없었던 백성일지라도.

 

  

 

정조는 재위 13, 도화서 화원들에게 화제(畫題)를 출제한다.

그림의 주제를 논밭의 새참이라 한 뒤 하나 더 덧붙여 당부하였다.

 

 보자마자 껄껄 웃을 수 있는 그림일 것!’

 

그림 속의 인물이라면 어진과 사대부만이 가능했던 조선 후기, 서민의 생활과 정서를 그대로 드러낸 풍속화가

김홍도를 필두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또한 박제가, 이덕무 등에게 한양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성시전도(城市全圖)라는 시를 짓도록 한다.

정조는 박제가의 시를 으뜸으로 쳤다는데 그의 저서 북학의에선 '()에서 나오는 분뇨를 다 수거하지 못해 더러운 냄새가 길에 가득하며, 냇가 다리 옆 석축에는 인분이 달라붙어 큰 장마가 아니면 씻기지 않는다.'라고 적나라하게 고발한 바 북학의수출금지라는 명도 내렸다고 한다.

 

   

이처럼 백성들의 면면을 화원들의 그림으로 탐색하고 나라 구석구석을 시문을 통해 살피던 군주의 위민(爲民)

정치는 역사기록 곳곳에 등장한다.

 

   

나의 생각은 오직 백성들이 편안하게 사느냐, 근심에 찌들어 사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수령의 손에 달려 있다. 나는 자나깨나 수령을 선택한다”(擇守令)는 세 글자를 마음속에 두고 있어

수령이 현지로 부임할 때 반드시 불러 만나고 힘써 경계하라는 말을 일러 보낸다.

 

                                                                                                                             [홍재전서] 일득록

 

 

 

부임하는 수령을 일일이 만나 정사를 당부하였으며 그 지역 터줏대감인 양반사족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수령권을 존중하여 수령의 임기보장을 하는 등 구체적으로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측근인 유득공, 박제가.

정약용, 박지원을 지방관으로 파견하여 민생의 실정을 두 눈으로 보듯 파악하고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는 눈물을 흘리는 군주가 정조이다. 

 

 

 

정조는 비밀리에 임명하는 암행어사 제도를 많이 활용하였는데 그의 재위기간동안 암행어사 60, 별견어사 53회로 다른 군주들과 비교할 때 두 배 이상 파견하였으며 암행어사의 절반이상이 그가 육성했던 규장각의 초계문신들이었다고 하니 긴밀하게 현지의 사태를 살펴나갔다.

 

암행어사를 파견할 때에는 암행어사를 감시하는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지방 세력과의 결탁과 부정이 근절되도록 대처하는 의지를 보였으니 개혁과 동시에 그로 인한 부작용까지도 면밀히 검토하는 주도면밀하고 현명한 군주였다.

 

 

백성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노력하였던 그는 한 번은 경모궁 공사현장에서 환궁하던 중 백성들의 무리가 하소연 하는 것을 듣고는 즉시 해결해 주었으며 감사나 관리가 격쟁*하는 백성에게 보복을 가할 수 없도록 합법적인 조치로 그들을 보호하였다.

 

*격쟁: 조선시대에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이 궁궐에 난입하거나 국왕이 거동하는 때를 포착하여

·꽹과리[[]등을 쳐서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자신의 사연을 국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행위

 

 

김홍도-취중송사S.jpg  

:: 김홍도 취중송사도(醉中訟事圖 

벼슬아치가 지나는 행차 앞에서 두 백성이 억울한 일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민심을 살피며 어떻게 하면 보다 살기 좋게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새로운 나라, 새로운 형태의 이상적인 신도시를 계획하게 되고 이는 사도세자의 묘를 이전하면서 구체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인 수은묘를 배알했을 때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세손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해 슬픔이 좌우를 감동시켰다.'

   

사도세자의 묘는 ''도 아니고 ''*도 아닌 묘라고 불렸으므로 정조는 즉위직후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묘는 영우원으로 상승시키고 13년간의 치밀한 준비 끝에 묘소를 이장한다. 명당자리를 일일이 살펴볼 정도로

풍수지리에도 밝았는데 묘소 이전을 위해 오랜 기간 사전작업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묘소 이전을 저항하는 세력 간의 조정뿐 아니라 민심을 얻기 위한 절차도 중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조는,

   

"내가 즉위한 후로 한 번도 백성에게 혜택을 입힌 일이 없는데, 더구나 본원에 관계된 일로

백성을 수고롭게 하겠는가"

 

 

 

털끝만한 폐도 백성에게 끼치지 않기 위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200여 가구의 백성들에게 임금의 개인재산인

내탕금까지 털어 후한 보상을 해주었으며 좋은 곳으로 이주할 장소를 제공하였다.

'팔달산 아래 땅이 국세가 크게 트여 가히 큰 고을을 조성하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보고된 곳,

바로 수원 화성이다!

 

 

 

화성.jpg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화성의 이모저모

 

화성-방화수류정-야경.jpg

:: 화성 방화수류정

  

화성정문-장안문.jpg :: 화성정문인 장안문 

 

 

 

 

정조는 화성 축성 시 주민들에게는 강제 노동과 세금을 면제해 주었을 뿐 아니라 상인이나 장인에게도

다양한 혜택을 주어 화성에 모여 살게 하였다. 이렇듯 정조가 건설하고 싶었던 도시는 일부 세도가들만의

도시가 아니라 백성이 중심이 되는 이상도시였다.

 

 

민본사상에 입각하여 물류경제와 국제무역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시키려 했던 화성 축성은 10년 계획으로

시공에 들어갔으나 실로 놀랍게도 24개월 만에 그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이례적으로 성곽 축조에 백성이

자원하려고 몰려들고 노임은 장인은 물론 노비들에게도 지급되어 우수한 기술과 노동력이 잘 발휘되었으며

정조의 기획과 정약용의 치밀한 축성 설계, 녹로와 거중기, 유형거와 같은 과학 기구를 사용, 뛰어난 재상 채제공

의 시공감독, 조심태의 실행으로 인명 피해를 적게 하고 건축 기간을 줄일 뿐 아니라 비용까지 아꼈다고 한다.

 

 

이 같은 기적적인 성과가 드러나며 조선은 문화의 르네상스를 맞아 활짝 만개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상적인 국가의 모델로 설계했던 새로운 도시, 수원 화성으로 다시 한 번 조선이라는 나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가 싶었다.

 

 

좀 더 힘있게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였을까? 정조는 오월 그믐날 오회연고를 하교하는 승부수를 던지게 된다.

 

 

금기사항이였던 사도세자 사건을 모년의 의리를 범하는 일이라 언급하고 재상임명에 관해서는 남인등용의

의지를 밝힘으로써 조정을 일신하겠다는 변화의지를 드러냈다. 왕권강화를 견제하던 집권당인 노론세력은

개혁의지의 최종 결과물인 화성 축성이 달성되고 사도세자를 죽인 책임문제를 수면 위로 거론하자

위태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조선이라는 나라전체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최대의 관문이 남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조는 오회연교 하교 얼마 이후 등에 종기가 생겼고 증세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어의만큼 의학에 해박한 정조였기에 누가 지은 약이고 약재는 무엇인지 물어가며 처방을 의논해간다.

친부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한 홧병과 극심한 과로가 병의 원인이었겠지만 그는 개혁을 추진할만한

여력이 있었고 당시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의 심각한 상태는 아니어서 회복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완전하게 자기편으로 믿을만한 어의들도 없었고 그들이 제시한 처방전도 불투명했다.  

 

   

이때 극적으로 노론의 실세인 정순왕후가 성향정기산(星香正氣散)’을 정조에게 복용시키겠다며 등장한다.

사관마저 내쫒으며 모든 이들을 물리치고 정조와 단 둘이 접견한 정순왕후. 곧이어 정순왕후는 정조의 승하소식

을 전한다.

정조의 죽음에 대해서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단 한 사람, 숙적이었던 정순왕후다.

 

 

위독한 상태에서 수정전!(壽靜殿)이라는 외마디 비명이 정조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후 정조 독살설은

공공연하게 퍼져간다.

 

 

서거 직후 11살의 어린 세자를 대신한 정순왕후 수렴청정은 미래를 향한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급속하게

폐쇄적인 정국으로 되돌린다. 노록 벽파는 마침내 부활하고 정치노선이 달랐던 남인들과 소론들은 박해를

받고 참형에 처해지거나 유배를 간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던가! 이 땅이 헤쳐 나가야 하는 조선의 운명은 한 임금의 몫만은 아니었던 것일까?

하늘은 성군인 정조를 이 땅에 내렸지만 하늘은 두 가지 길을 두고 묻는다.

 

   

‘도약할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미래의 문을 열고 나아갈 것인가? 과거를 웅켜쥐고 추락할 것인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함께 개혁에 동참하여 갈 수 있는지를. 그리하여 새롭게 열리는 세상에서 만민이 평등하고

복록(福祿)한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는가를.

 

 

새로운 세계, 미래를 향한 개혁의 길에 대한 선택권은 기로에 놓인 집권층에게 주어졌고 언제나처럼 인간은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 이뤄놓았던 것을 결코 놓지 못한다.

선택의 결과는 그 이후의 조선의 상황이 설명하듯이 임금의 서거 이후 벼들이 하얗게 변하는 기현상이 일어나

상복을 입은 벼라는 말이 나돌았고 민심은 흩어지고 황폐화되어 민란이 속출한다

그후 지속적으로 이어진 세도정치로 조선은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그로부터 120년 후

조선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

 

 

 

새벽에 화성 떠나 머리 돌려 바라보며 (明發華城回首遠)

지지대 위에서 또 한없이 머뭇거렸네 (遲遲臺上又遲遲)

 

                                                                                              -정조

 

 

 

사도세자의 융릉을 참배하고 한양으로 돌아서는 정조의 발걸음은 그의 시처럼 머뭇거리며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개혁을 바로 눈앞에 두고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순간이야말로 어찌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생과 사는 하늘의 일이건만 하늘이 낸 성군 정조는 생명의 끝 이전에 조선의 국운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적자인 백성들과 그들의 터전인 화성을 두고 돌아서야만 하는 걸음이야말로 한없이 더뎠을지도 모르겠다.

 

   

친부의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았지만 정치보복을 하기보단 백성을 위한 나라로 거듭나길 원했던 왕,

백성과 마주하고 백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도시 화성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자 했던 왕,

백성이 먹을 죽을 직접 맛보며 백성들을 자식이라 하며 쌀과 죽을 나눠줬던 왕,

서얼을 등용하여 그들의 재능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유감없이 쓰게 하였던 왕 

노비문서를 불태웠던 왕 

상공업과 농공업에 뛰어난 치세를 보였던 왕 

오직 학문을 익히는 즐거움과 백성들과 오래도록 복락을 누리고 싶었던 왕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 

하늘이 내린 군주, 정조 이산

 

 

그의 당대에 조선을 통틀어 최고로 손꼽히는 출중한 인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최고의 명제상, 채제공,

실학을 집대성한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

천문학자이자 과학자 홍대용

재야 지식인 북학파의 스승이자 문인, 박지원

북학파의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 

   

 

그들의 만남은 필연이었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정조의 서거 후 단 몇 년 사이에 조정에서 사라진다.

마치 정조와 함께 대업을 이루려고 어딘가에서 왔던 사람들인 마냥.

군주 한 사람의 빈자리는 이토록 컸다 

 

 

가을밤, 달이 밝다.

 

 

스스로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지칭하며 만백성을 보살펴왔듯이 백성들의 군주 정조는

역사의 고비 고비에서 밝은 달처럼 길잡이가 되어 이 땅을 굽어보고 있을까?

하지만 이 땅에 대한 미래와 책임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전한 몫이기에 되풀이되는 역사에서는

다가오는 꿈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유난히 밝은 달 아래

만백성이 평등하게 복락(福樂)을 누리는

그리운 꿈이었기에…

 

 

 

 

정조대왕능행도-시흥황어행열도S.jpg

:: 정조대왕능행도-시흥황어행열도

임금님 행차 때 임금님의 얼굴은커녕 땅바닥에 엎드려 숙여야했는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성들이 앉아서 놀면서

임금님의 행차를 보고 있다.  임금님의 행차를, 행복을 주러 간다는 의미로 행행行幸 이라 불렀는데 왕실만의 잔치가 아니라,

백성들 모두 함께 즐기는 잔치였기 때문이었다.  

 

 

 

 

*정조 이산 편을 마치며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담지 못하는 졸필과 그릇을 한탄하며 정조 이산 편을 마무리합니다.

 

역사에서 보여주듯이

삶의 순간순간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길에서

스스로 되묻습니다.

 

'도약할 것인가? 안주하여 머무를 것인가?'를...

 

 

 

 

 

감사합니다!

 

 

 

 

 

 

 

 

 

 

 

 

 

 

 

 

 

 

 

 

 

 

 

 

 

 

 

 


  • ?
    홈페이지 영화지기 2014.10.11 15:53:11
    글이 너무 좋아서...퍼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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