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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그들의 시절_정조 이산 두 번째 이야기

 

 

 

 

파초도.jpg  

 

 

 

영춘헌* 섬돌 위 주인 잃은 적석(赤舃)

외줄기 달빛아래 낙엽만 지키네

규장각 서책 살뜰히 살피던

부지런한 벗들의 발걸음 흔적 없구나

눈앞에 다가온 마지막 조선의 꿈

삭풍(朔風)에 홀연 꺼져갔으니

하늘도 저버린 무상한 시절이여

 

 

맑은 하늘 밝은 달과

달을 담은 만천(萬川) 예 있건만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은 아는가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영춘헌(迎春軒) : 창경궁의 내전(內殿)으로 정조가 거처하다가 승하한 곳이다.

*만천명월주인옹 : 만 개의 하천을 비추는 달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만 개의 하천이 백성이라면 그 하천에 고루 비추는 달처럼

                                왕의 덕이 백성에게 미치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정조 자신을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이라 칭하였다.

 

   

당나라 때의 승려인 회소(懷素)는 글씨로 명성을 떨쳤다. 사람들은 그가 사는 곳을 녹천암(綠天巖)이라 불렀는데 생활이 궁핍했던 탓에 파초 만 그루를 심어 종이 대신 너른 파초 잎에 글씨 연습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크고 너른 파초 잎에 시를 적고 글씨 쓰는 것이 문인들 사이에 하나의 멋스러운 유행이 될 정도로 파초는 학자들의 글과 그림에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위 그림은 정조대왕이 그린 파초이다. 파초도에는 다른 군더더기 없이 작은 바위와 파초가 전부이다. 화폭의 3/4을 차지하는 파초의 대궁은 위로 솟아나와 좌우로 펼쳐진 너른 잎으로 여백을 살리면서 파초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정조는 그림 뿐 아니라 섬돌 옆에 파초를 보며 세손시절에 시도 남겼다.

 

 

정원에 고운 봄이 짙어져 가니

초록 파초 새잎을 펼치려는데

펼쳐내면 빗자룬 양 커질 것이니

탁물(托物)이란 대인들이 힘쓴 바였네.

 

                                                                                           - 섬돌 앞의 파초(芭蕉)

 

 

짙어져가는 봄빛에 빗자루 마냥 커지는 파초 잎은 폭염의 뜨거운 땡볕에 싱그러운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시원스레 비라도 내리면 넓은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의 운치를 즐기며 시를 너도나도 읊었다고 한다. 중심에서 새롭게 뻗어 나와 새 잎으로 이어지는 대봉은 새 잎에서 새로운 지혜를 구하는 호학(好學)군주인 정조의 학자적 기질을 보여주고 넉넉하고 수수한 모양새의 커다란 잎은 성군(聖君)의 자질을 닮았다. 파초의 대궁과 너른 잎이 상징하듯 성군의 토대는 그의 세손시절부터 내면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여기, 파초를 벗처럼 사랑한 또 한 사람이 있다.

귀양 중인 이서구에게 보낸 답장에 연암 박지원은 아무런 꾸밈이 없는 파초에게 벗인 양 마음을 터놓고 있다고 했다.

 

 

옛사람 중에는 파초를 벗한 이가 없는데, 나는 유독 파초를 사랑합니다. 줄기는 비록 백 겹으로 돌돌 말려 있지만 가운데가 본래 텅 비어 한번 잎을 펼치면 아무런 꾸밈이 없으니, 이 때문에 나의 마음을 터놓는 벗이 되었지요. 달 밝은 창이나 눈 내리는 창가에서 가슴을 터놓고 마음껏 이야기하니, 중산군(中山君, 중산에서 나는 토끼의 털로 만든 붓)이 민첩하여 말없이 도망치는 것과는 같지 않습디다.

 

  

 

척재제시(정선).jpg  

::척재제시(惕齋題詩) | 정선

 

 

파초 잎을 보며 백성을 살피는 군주의 품성을 논하던 정조는 위민정치를 실현했던 한 나라의 군주였고 허허롭고 소탈한 파초의 자태를 사랑했던 박지원은 재야 지식인의 거두였다. 그림 그리고 시 짓고 벗으로 삼으며 파초를 지극히 사랑했던 두 사람은 조선 후기 동시대를 살았다.

 

 

그들이 살았던 조선 후기는,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이용후생을 표방하며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전기의 모습은 쇠퇴하고 명분론에 치우신 사림파의 세상이었다. 케케묵은 제도와 명분을 내세우기에 급급한 성리철학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점점 더 벌려놓았고 사회는 병들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선조 때 시작된 임진왜란에 이어 대란이 계속되면서 국운이 기울어지게 되자 주자유일주의에서 벗어나 백성을 위한 정치를 모색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성호학파와 연암 박지원을 스승으로 한 북학파가 그랬다.

 

 

당파와 정쟁으로 얼룩진 정국 속에서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잃게 되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었던 정조는 이러한 시대의 요청과 맞물려 왕권의 권위와 민생경제를 회복하는 새로운 개혁의지로 정치구도를 구상한다.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들만 가득한 상황에서 난국을 타파할 새로운 개혁에 동참하고 힘이 되어줄 인재를 찾게 되고 이에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서얼이라는 신분의 제약으로 세상에 뜻을 펼치지 못하던 음지의 학자들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한다. 박지원을 중심으로 재야에서 학문과 사상적으로 맥을 같이 했던 북학파의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가 바로 정조가 찾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백탑*부근에 모여 살며 학문적 근거지를 형성했기에 백탑파로 불렸다.(백탑파에서 북학파가 나왔으므로 백탑파가 곧 북학파이다.)

 

 

백탑.jpg  

:: 현재 종로에 위치한 탑골공원 내 원각사지 10층 석탑

 

 

백탑파의 거두였던 박지원은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명문가의 후예였으나 벼슬살이에 뜻을 두지 않았다. 주변의 권고로 응시한 과거에서 장원을 두 번이나 했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이었지만 그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지인들과 나라와 백성을 위해 현실을 위한 학문을 연구하며 문화를 선도하고 실력 있는 제자들을 정국에 진출시키며 관직도 아니고 산림의 고수도 아닌 자신만의 또 다른 길을 걸어간 것이다.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는 과정록(過庭錄)에서는 당시 백탑파의 교류를 이같이 회상하고 있다.

 

 

항상 서로 만나면 며칠씩 묵으면서 위로는 고금의 치란과 흥망의 까닭과 옛날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고 시골에 숨어 있는 대절과 제도의 연혁, 농공의 이익과 폐단, 산업 경제, 산천과 국방, 천문, 관상, 음악, 초목과 새, 짐승, 육서와 산수 등을 관용하고 포괄하여 기록하시었다.

 

 

백탑파의 우정의 향연은 그들이 지은 시문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데 「북학의]를 저술한 박제가의 시에서도 여실히 보여준다.

 

 

초경*에 유군을 만나고

사경*에 이자를 만났네.

오늘 밤도 또 반은 지났으니

이같이 올해도 또 저물겠지.

 

 

*초경: 8

*사경: 2

 

 

마음과 뜻이 통하는 벗들과의 교류는 밤새 이어졌고 한 해가 다가도 부족하기만 했던 것 같다. 심지어 혼인을 한 첫날밤에도 그저 벗이 좋아 말에 안장도 걸치지 않은 채 백탑 주위를 돌며 벗들의 집을 배회했다고 하니

그의 또 다른 시 <야숙강산(夜宿薑山)>이다.

 

 

기질 다른 형제요.

한 방에 살지 않는 부부라

사람이 하루라도 벗 없으면

좌우의 손을 잃은 듯하리.

 

 

강산(薑山)은 사족출신 이서구의 호이다. 그의 집에서 머물며 형제이자 부부로 벗을 칭할 정도의 깊은 사귐에 출신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제가-목우도.jpg  

:: 목우도(牧牛圖) | 박제가 

북학의를 저자로 유명한 박제가는 시 뿐 아니라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많은 그림을 남겼다.

 

 

상호간에 두터운 우정을 바탕으로 깨인 안목을 세상을 보고 탐구하던 학문적 기반 속에서 나라와 백성을 가난에서 구제하기 위해 청나라의 건륭 문화가 이룩한 기술 문명을 적극 배워야 한다는 움직임이 이들 내에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북쪽을 배우자는 북학운동이다.

 

 

옛 것을 본받는 법고(法古)는 때 묻은 병폐가 있고 새로이 창조하는 창신(創新)은 상도에서 어그러지는 병폐가 있다. 법고하되 변화를 알고 창신하되 전거에 능해야 한다.

 

 

박지원은 문장론을 빗대고 있지만 이는 문학사류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그의 전반적인 사상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복고성의 한계를 벗어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창신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남다른 행보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관직진출을 거부했던 박지원은 백탑파의 제자들과 함께 청나라 방문기인 열하일기를 기폭제로 북학 운동을 확산하면서 선각자적 사명을 완수하게 된다. 박제가의 스승이었던 그는 북학의서문에 이렇게 섰다.

 

 

박지원.jpg    

:: 박지원 초상

 

 

 

학문을 하는 길에는 방법이 따로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잡고 묻는 것이 옳다. 비록 종이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를 많이 알면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 자신이 남과 같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것은 종신토록 고루하고 무식한 테두리에다가 자신을 가두어 두는 것이 된다.

 

 

북학의에서 박제가는 청의 문화와 문물뿐 아니라 외국의 과학과 기술도 수용하자고 주장했다. 선진국의 문명과 기술을 인정하고 개방적으로 받아들여 배우는 자세는 조선의 근대화에 필수적인 시대적 요청이었다. 북학파가 추구하는 문화와 사상은 유교에 갇혀버린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경제합리주의에 입각한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을 도모하자는데 있었다. 그 뜻은 당시 군주였던 정조의 집권층의 폐쇄성을 타파하고 위민(爲民) 정책을 위한 개혁과 만나게 된다.

 

 

백성이 아니면 임금이 누구와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그래서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다. 백성은 먹을 것이 아니면 살아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한다. 진실로 나의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의 하늘을 중히 여긴다면 백록을 떠맡고 하늘에 천명이 영원하기를 비는 것이 이에 기초할 것이다.”

 

 

일득록에서 밝힌 것처럼 그가 생각하는 백성은 곧 임금의 하늘이었다. 임금의 존재는 백성이 있음으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정조는 즉위 후 서류소통절목을 반포로 서얼을 적극 등용한다. 홍대용으로부터 전해 들어 백탑파의 예사롭지 않은 행적을 익히 짐작하고 있던 차였다.

 

 

고신(孤臣)과 얼자(庶孼)*는 사려가 깊다는 맹자의 말처럼 출중한 실력임에도 신분적 제약과 시대모순으로 그늘에서 학문했던 그들이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새로운 사상과 세상으로 열려있었고 정조는 치밀한 정치적 계획 하에 이들을 규장각으로 영입하여 교육양성함으로써 개혁의 파트너로 삼는다. 그들은 규장각 검서관의 업무뿐 아니라 사관의 임무까지 띠며 지근거리에서 임금을 가까이 하였다.

 

*고신(孤臣)과 얼자(庶孼) : 고독한 신하와 서얼

 

 

우리 검서관 네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천한 사람으로 태평성대를 만나 이 책임을 맨 먼저 맡아서 바쁘게 근무한 지가 지금 7년이 되었으니 어찌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비록 문장을 짓고 글씨를 쓰느라 근력이 다하고 도서(圖書)에 정신이 다한다 하더라도 감히 사양할 수가 없다.

 

 

임금의 베푼 하복에 대해 이덕무는 위와 같이 썼다.

정조는 중요한 행차에 친히 그들을 대동하며 소홀하지 않는 것은 없는지 살피며 임금과 그들을 지음(지음)처럼 각별히 대하였다. 어떤 날은 규장각을 주제로 시를 바치기도 했는데 정조는 하나하나 읊으며 이덕무의 시를 일등으로 꼽으며 각각 상을 내렸다.

 

 

봉모당의 은하수*

 

방대한 왕가의 문헌 후손에 전하니

성한 덕 천추에 잊을 수 없겠네

성조와 신손이 심법으로 주고받아

천지의 도를 따른 법도가 남아 있네

아름다운 은하수의 빛 언제나 밝게 비추고

왕성한 기운 뜻 깊은 말씀에 길이 머물렀네

구름 가에 높은 집 우뚝 솟았으니

황성의 옛일을 조정에서 본받은 것이네

 

 

*봉모당의 은하수는 <서향각의 연꽃과 달>, <규장각에서 선비를 시험하다>, <불운정에서 활쏘기>, <개유와의 매화와 눈>, <농훈각의 단풍과 국화>, <희우정의 봄빛>, <관풍각의 추사>는 규장각을 주제로 지은 이덕무의 연작시이다. 

 

 

 

이후 일각에선 패관소품, 잡서를 금한다는 정조의 문체반정을 들어 정조와 박지원을 대립각으로 세우기도 하지만 호시탐탐 천주교를 문제 삼아 탄압하려는 노론으로부터 남인을 미연에 보호하기 위해 문체반정으로 노론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포석을 깔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누군가의 글을 박지원의 연암체라고 할 정도로 정조는 연암체에 대해 꿰뚫고 있었으며 문체반정으로 반성문을 쓸 경우 박지원을 대제학 임용이라는 특별대우를 넌지시 제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지원은 반성문을 쓰지 않았고 정조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정조의 서거 후 박제가가 그를 기리며 지은 시는 군왕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대개 성인(聖人)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내가 몸소 우리 임금을 만날 줄이야.

말씀하여 밝히신 것은 하늘처럼 높았고

끼치신 혜택은 땅처럼 두텁게 쌓였다.

호탕한 군자의 풍모여

만물을 소생시키는 기운이 왕성하신 것은 아주 좋은 술과 같고

일을 도모하심에는 본말을 능히 꿰뚫으셨다.

만세토록 우러러볼 북두칠성 같으신 님이여.

 

 

 

 

정조.jpg

:: 정조 대왕 어진

 

 

그들이 눈을 뜨고 바라보았던 하늘은 더없이 투명하고 푸르렀다.

시대는 곤궁하고 갖은 외압으로 사방으로 막혀있었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오직 한 가지 뜻으로 함께 했기에,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청사진을 함께 실현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딛었던 땅은 임금, 양반, 서얼이라는 넘나들 수 없는 금을 긋고 있었으나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시대의 고통을 끌어안은 가슴은 더욱 뜨겁게 요동치고 있임을 서로의 눈빛에서 알아볼 수 있었기에.

그랬기에 찬란하게 빛나던 날들이었다. 역경 속에서 누구보다도 눈부셨던 그들이었다.

오회연교라는 결정적 승부수를 던지기 전까지…(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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