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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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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연정(戀情)

 

 

 

 

 

봄날의-연정2.jpg  

 

 

터럭 하나 미동 없던 날선 침묵이

능청거리는 묏버들잎 사이로 무너진다

물동이 인 아이 흥에 취해 휘청대다

산천초목 연두빛 봄물을 뒤집어 쓰니

멀리 온 객 처마 밑에 마주앉아도

봄날의 달뜬 홍안 어이 가실까

 

 

 

*여기에서 멀리 온 객이란 반갑지 않은 손님, 나이, 주름을 의미합니다. 눈치채셨겠지만요^^ 

------------------------------------------------------------------------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특히 화가와 동시대를 살지 않는 경우 (위대한 화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애석하게도 현존하지 않듯) 화가가 남긴 산물인 그림 속 풍광을 좇아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숨 쉬는 그이를 떠올리며 화가에 대한 상상력을 무럭무럭 키우곤 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족적을 남겼던 조선 제일의 천재 화가 김홍도를 흠모하게 된 동기는 그림이 아니었다.

 

 

섣달 눈이 처음 내리니 사랑스러워 손에 쥐고 싶습니다. 밝은 창가 고요한 책상에 앉아 향을 피우고 책을 보십니까? 딸아이 노는 양을 보십니까? 창가의 소나무에 채 녹지 않은 눈이 가지에 쌓였는데 그대를 생각하다가 그저 좋아서 웃습니다.’

 

 

김홍도가 지인에게 보낸 서찰의 일부이다. 단 몇 줄의 글은 한 겨울 소리 없이 포근하게 쌓이는 눈 내리는 양을 보여주다가 서안(書案) 앞에 피어오르는 향내를 따라 고요함과 고즈넉함 가운데로 안내한다.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이 향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면서 허허실실 웃어대며 빈 종이에 붓을 적시는 그 따사롭고 정감 있는 감성에 젖어들게 된다. 이윽고 서찰의 대상과 동일화 시키더니 설레이는 연정(戀情)의 고백이라도 받은 듯 글 몇 줄에 흠뻑 빠져버린 냥이란!

 

씨름, 무동, 서당 등의 풍속화로 조선 후기 떠들썩하게 했던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

 

씨름.jpg  

[씨름]_김홍도(金弘道)作 | 지본담채(紙本淡彩), 39.7cmx 26.7cm, 보물 527호

 

서당.jpg  

[서당]_김홍도(金弘道)作 | 지본담채(紙本淡彩), 39.7cm x 26.7cm

 

 

내가 아는 만큼만 눈에 보인다고 풍속화라는 익히 내가 아는 만큼만 보곤 저리 밀쳐 두었는데 다시금 그림들을 찬찬히 살피니 새로이 눈뜨게 된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그야말로 서찰 이후 다시 한 번 화가에게 겹겹이 홀딱! 반하고 말았으니!

 

마상청앵도.jpg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_김홍도(金弘道)作 | 지본담채(紙本淡彩), 117.1cmx52.2cm

 

 

 

그는 풍속화라는 양식을 처음 고안해 당시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그림을 널리 펴 서민들의 생활상을 재치 넘치고 넉살좋게 표현한 그림의 대중화를 시도한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대 도화원 시절 벌써 왕의 어진작업에 참여했었고 산수(山水), 인물(人物), 화훼(花卉), 영모(翎毛), 불화(佛畫)등 모든 분야에서 으뜸이었던 조선 최고의 천재 화원이 아니던가. 문화의 르네상스라고 할 정조 시대 왕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조선의 모든 것을 화폭으로 남겼던 중인 출신의 김홍도.

 

 

<마상청앵도>에 멋들어지게 흘려 쓴 화제는 이러하다.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니

운지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밀감 한 쌍을 올려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 깁을 짜고 있구나

 

 

한 잔 술을 걸친 듯 흘려 쓴 이 한 편의 시. 봄날 한 때의 정경으로 마음을 흔드는 것이 <마상청앵도>라면, 어느 순간엔 흥에 겨워 맑은 먹을 풀어 덧칠하듯, 시는 소리없이 마음을 훔쳐 버린다.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는 건울음 재주 좋은 새, 꾀꼬리의 고운 음성이다. 옛 글에 꾀꼬리는 서른두 가지 곡조로 목을 굴린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 많은 저 선비에게는 어히려 천 가지 가락이 되어 귓전을 더욱 황홀케 하니, 마치 아리따운 여인이 꽃 안에 파묻혀 부는 생황의 화사한 봄노래인 듯하다.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 올려놓은 밀감 한 쌍은 또 무엇인가? 눈부시게 샛노란 꾀꼬리의 씻은 듯 깨끗한 모습이다. 그 모양이 얼마나 예뻤으면 시인은 순간 얼큰한 누룩 냄새까지 맡았으랴. 수양버들 실가지 위아래로 무엇이 바빠 그리 오르내리느냐? 마치 명주 짜는 베틀 속의 황금빛 북 모양으로 오락가락 눈길이 어지럽구나. 오호라! 그러고 보니 이 봄날의 아슴푸레한 안개와 보일 듯 말 듯한 실비가 모두 네가 짜서 드리운 고운 깁이었단 말이냐!

놀라운 감수성과 가없는 상상력으로 펼쳐낸 이 한 편의 시를 나는 단원 김홍도 그 사람의 자작시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꾀꼬리의 소리를 말하고, 이어 꾀꼬리의 생김새를 그리고, 나아가 오르내리는 꾀꼬리의 움직임을 따르다가, 결국 온 강가를 촉촉이 적시는 한 편의 시인데, 단원은 또 본래 시인의 자질이 있었던 인물이다.-

(*시상의 풀이에 관해서는 이보다 좋은 해석은 찾아볼 수 없어서 우리나라 글과 그림에 정평이 나 있는 오주석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왔다.)

 

 

자작시가 틀림없다고 주장한 것처럼 그림 그리고 시 읊은 그의 모습을 화폭에서 발견하게 된다. 봄날 감흥에 젖은 한 선비의 모습, 오롯이 그가 남아있다.

7살 때부터 그의 스승이었던 강세황은 그에 대해『단원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단원의 인품을 보면 얼굴이 청수하고 정신이 깨끗하여 보는 사람들은 모두 고상하고 세속을 초월하여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다 알 수 있을 것

또 조희룡의 호산외사에는 “(김홍도는) 풍채가 아름답고 마음 씀이 크고 넓어서 작은 일에 구속됨이 없으니 사람들은 신선 같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문여기인(文如其人)’ 즉 글은 그 사람과 같다고 한다. 글만 그럴까? 마찬가지로 화여기인(畵如其人)이라. 마상청앵도에 있는 운치있는 선비, 봄날 꾀꼬리 소리에 귀 기울리며 말을 멈추는 선비가 곧 김홍도 자신임을.

산천초목이 연두와 초록빛으로 어우러진 봄, 행여 좁은 길에서 옷깃이라도 마주칠 라면 남녀가 유별한 시대라지만 이도 인연인데 짧은 목례라도 꼭 건네 보고 싶은 맘은 어디 내 맘뿐일까. 행복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림 속의 훤칠한 선비에게로 빠져들어 본다.

 

 

그는 화가였을까? 시인이었을까? 시와 그림은 하나일까? 둘일까?

옛 선인들은 시와 그림을 다르게 보지 않았다. 옛 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有聲之畵)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無聲之詩)란 말이 있다. 북송의 신종 화원의 예학이면서 『임전고치의 저자로 유명한 곽희가 "그림은 소리 없는 시요,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라(畵是無聲詩 詩是無形畵)"라고 말한 것이나, 당나라 서화가인 왕유의 예술을 보고 동시대의 소동파가 "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畵中有詩 詩中有畵)"라고 한 것이나 시와 그림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뜻으로 또 이렇게 근사한 싯구를 선물했다.

 

 

형태가 닮았는지로 그림을 논한다면

그 식견은 애들 생각이나 마찬가지 일세

 

시 짓는 걸 반드시 이렇게 라고 한다면

진정 시를 아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시와 그림 본래부터 한 가락이니

자연스런 솜씨와 맑고 신선함이 있을 뿐

 

누가 말했나, 한 개의 붉은 점에도

가없는 봄기운을 모두 부쳐낸다고

 

 

 

과연 김홍도의 문장이 마음을 움직였고 그의 그림을 찾아 새로이 눈 뜨게 했고 글이 곧 그림이요, 그림이 곧 글임을, 경물이 곧 화자의 마음이자 그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화폭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물이 경계 없이 넘나들며 시간도 공간도 제약받지 않는 다른 차원으로 초대되어 단 한 폭의 그림 앞에 동시에 전율함! 이것이 예술작품에게서 오는 벅찬 감동이 아닐까?

거기에다가 그는 거문고, 당비파, 생황, 퉁소 등을 연주하는 음악가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전해지니니무심타, 하늘이여!

 

 

 

포의풍류도.jpg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_김홍도(金弘道)作 | 지본담채(紙本淡彩), 29.7cmx37cm

*시뿐 아니라 그는 음악도 대단한 경지였다고 전해지는데 그림에 악기를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이 곧잘 등장하는 이유이다. 맨발로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이 소탈한 그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지난번 독화(讀畵)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고. 그 읽는 의미에 대해서.

이제서야 발견한 <마상청앵도>. 그 그림을 얼마나 읽어낼 수 있을까. 내 방 한가운데 턱 허니 그림을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감상한다면 더 잘 읽어낼 수 있겠지만^^; 따사로운 봄날 아직 이른 버드나무의 휘늘어진 잎을 상상해보며 이런 생각에 잠겨본다. 좀 더 나이가 어렸더라면, 흘려보낸 세월이 적었더라면, 젊음의 싱싱함 속에 푹 빠져 이리저리 봄바람에 흔들대고 있었다면 <마상청앵도>가 결코 깊숙히 머물지 않았으리라.

 

유년시절의 봄, 풋풋하다 못해 파릇파릇한 열 살 남짓한 시절의 봄에 내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된다고. 생의 거친 고개를 넘어가며 불혹의 나이를 맞고 아스라이 사라질 봄볕을 맨얼굴로 맞을 때 노년의 그가 서둘러 그리고 싶었던 화폭 가득한 봄빛의 흥취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특혜란!

 

다시 돌아오지 않는 흐르는 물처럼 돌아보지 않는 매정한 시간은 또 다른 봄을 불러도 그 봄은 아닐 것이다. 좁은 길, 흔들대는 버들가지 실바람 사이로 봄을 노래하는 꾀꼬리 한 쌍에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아득한 눈길로 봄과 눈 맞추는 그 선비는 이제 없다. 그 봄은 다시 올 리 없겠지만 신비하게도, 터벅터벅 길을 걷던 말도, 따분해 죽겠는 말구종 아이도, 버들잎 사이를 스쳐가던 아스라한 바람이 멎고 봄이 멈춘다. 한 장의 화폭은 그 짧고 아늑한 순간을 옅은 탄식을 내뱉으며 심상(心想)에 영원히 간직하게 한다.

 

 

노년의 김홍도가 남기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처음과 다르게 형태는 변하고 자취를 감춰 다시는 돌아보지 못할 것들 사이에서 그때 느꼈던 안온한 정감은 한 폭의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아니, 고스란히 붙잡고 싶었던 것은 정작 당사자가 아닐른지

사라지는 것들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그것이 경물이 될 수도 그 경물이 투영되는 순간의 마음일수도, 붙잡고 곁에 두고 싶은, 생의 빛났던 한 순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일 지도 모르겠다.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무한한 오마주, 그래서 그들은 불멸로 존재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가 아닐까.

 

 

 

 

 

 

 

 

 

 

 

 

 

 


  • ?
    홈페이지 영화지기 2014.03.14 22:40:11
    그림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단원의 그림을 보면 김홍도라는 분께서 단아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있고, 풍류도 아는 멋있는 분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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